우리나라 역사에서 자신의 맘대로 폭정을 일삼은 폭군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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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번쯤 왕이되는 상상을 해보고는 하는데요. 사람들의 위에서

자신이 하고픈 일을 맘껏 하면 정말로 자유로울것 같은데요.


하지만 우리가 상상하는것처럼 왕은 자유롭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지켜야할것도 많고 책임도 많고 행동조차 맘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거기다가 신하들의 권력을 통제하지 못하면 권력을 빼앗기는 허수아비 왕이


될수도 있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였겠죠.


헌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상황에서도 정신줄을 놓은 왕들이 있었죠.

책임과 의무는 헌신짝처럼 버리고 권리만 챙기려고 한 역대왕들이 있었습니다.


술과 여자의 탐욕에 빠져서 정사는 돌보지 않고 쾌락을 우선시했던 왕들을

우리는 폭군이라고 낙인을 찍었습니다.


결국 폭정을 견디지 못한 백성들과 신하들의 반발에 왕의 자리에 쫒겨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데요.


어떠한 폭군들이 있었는지 한번 알아볼까요?




1.모본왕




고구려 제 5대 왕 모본왕은 한국사 최초의 폭군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성품이 포악했던

모본왕이지만 즉위 초기에는 자연재해로 궁핍한 백성들을 돌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본성은 어쩔수 없는것일까요? 사람을 깔고 앉고 누울때는 사람을 베고 누울

정도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자신이 말을 하는 동안 움직이면 죽여버리고 바른말을 하는 신하는 활로 쏘아죽였습니다.

결국 신하인 두로에게 살해당하게 되는데 정확한 기록인지는 모릅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니깐요.




2.봉상왕




고구려 제 14대 봉상왕도 폭정을 일삼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성품이 원래 교만하고

시기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 임금이 되었으니 문제가 엄청 많았겠죠.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왕족인 달가를 

시기심에 죽여버렸습니다.


물론 봉상왕이 폭군만은 아니였습니다. 연나라의 칩입을 잘막아내고 대외 정치에 뛰어난 모습을

보였지만 집안정치에 미숙했스비다.


가뭄으로 백성들이 굶어가는데 화려한 궁궐을 짓는등 백성과 신하의 원성을 사는일을 많이 했습니다.

신하들이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듣지를 않았기에 결국 신하들이 들고 일어났고 자결했습니다.



3.의종




고려 제18대로 즉위한 의종은 시기를 잘못 만난것 같습니다. 여진족이 금나를 세워 고려를 위협하고

안으로는 이자겸이 난을 일으키고 서경 천도 운동이 일어나는등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예술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지녔지만 놀기를 너무 좋아하는 감성적인 왕이였습니다. 백성들의 생활터전을

정자로 만들기도 했는데 24년동안 정자수가 무려 32개에 달했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사치가 매우 심했습니다. 신하들이 의종에게 바치기 위해 백성들을 찬탈까지 할정도였으니 말이죠.

향락과 사치에 왕이 빠지면 결국 끝을 안봐도 알게되죠.


무신들의 난으로 인해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4.연산군




한국사에서 최고의 폭군으로 유명한 사람은 바로 연산군입니다. 조던 10대왕으로 즉위한 연산군은 초반에는 

빈민구제정책과 국방 강화책을 내놓는등 개혁군주로 외내부로 뛰어난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결국 생모인 폐비 윤씨의 일이 연산군의 어린시절 상처를 자극하고 감정을 흔들어 놓음으로 폭군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폐비윤씨 사건과 관련해서 모든 인물들을 제거하고 성종의 후궁들 살해, 할머니 인수대비 폭행 등 패륜을 

저지르게 됩니다.


이를 통해 강력한 왕권이 구축되자 정신을 놓고 사치와 향략을 즐기게 됩니다. 연산군의 공포정치는 결국

신하들의 반발을 가져오고 신하들에 의해 퇴위되어 유배지에서 쓸쓸하게 죽게되죠.


역사적 폭군들 이야기에서 교훈을 생각해보자면 결국 높은 위치일수록 더 많은 책임을 가지게 됩니다.

책임을 다하지 않고 권리만 챙긴다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폭군에 대해 다른 사실을 알고 있으시다면 댓글로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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