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산을 털어 669명의 어린 아이들의 목숨을 구한 위대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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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니콜라스 윈턴은 기사작위와 훈장을 받게 되었다.

영국 쉰들러라 불리우는 윈턴은 어떻게 669명의 아이들의 목숨을 구하게 된것일까?



기독교로 개종한 독일 유태계 영국인 은행가 부모 밑에서 부유하게 자란 윈턴은 1938년까지 상당한 부자이자

증권거래소 직원으로 풍족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날 휴가차 체코로 스키를 타라가서 수많은 유태인들이 수용소에 갖혀 지낸것을

목격하게 되고 윈턴은 유대인들을 구하고자 결심했다.



당시 많은 수의 독일과 오스트리아등 나치의 지배아래 있는 나라에서 수 많은 유대인들을 목숨을 살리고자

안전한 나라인 영국으로 망명을 시도하였다.


체코에서는 유대인의 망명시도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는데 윈턴은 그 어머니와 함께 자비를 털어

영국 가정에 체코에 사는 유대인 아이들을 입양시키는 절차를 진행했다.


나치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나치 장교들에게 뇌물을 주고 669명의 수용소에 갖히 아이들을 무사히 영국으로

보냈다.


1939년 3월에서 8월까지 8차례에 걸쳐 아이들을 영국으로 빼돌렸지만 그해 9월1일 나치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250명의 어린이들이 프라하에서 열차에 갖힌채 행방불명 되었다.


250명의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것에 대해 큰 죄책감을 느낀 윈턴은 50년간 자신이 한 일을 감추었다.

1988년 우연히 다락방에서 그 일에 대한 증거를 발견한 아내는 방송국에 이 사실을 알렸다.



BBC의 프로그램에서 윌턴경이 구한 아이들이 모두 방청객으로 등장하여 큰 감동을 주었다.

영문을 모른체 방청객으로 참관한 윈턴은 진행자가 노트에 적혀 있는 여성의 이름을 부르자 옆에 앉아 있던 여성이 "접니다"하며 포옹을 하는 감격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윈턴이 구한 600며의 아이들은 6000명의 가족들로 불어나 있었다.


윈턴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과 기사직위를 영국에서 받고 체코에서 2014년 최고 권위르 백사자 훈장을 받게된다.

윈턴의 생애는 3편의 영화로 제작된다.


유대인이 유대인이 돕는것을 당연하게 생각할수도 있지만 과연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전재산을 털어 다른 한국인을 도울 사람이

몇명인지 반성해볼 수 있다.


원턴경은 106살이 되던 해 수많은 딸과 손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잠을 자면서 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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