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여성을 유혹했던 카사노바의 비결과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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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유명한 바람둥이를 손꼽자면 카사노바를 꼽을 수 있습니다. 카사노바의 애정행각은 그 당시에도 수많은 이슈를 낳았는데요.

연애지상주의자, 성적 쾌락주의자이면서 독실한 기독교인, 예술가,외교관, 작가 등 수많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카사노바가 어떻게 수없이 많은 여성들을 유혹할 수 있었는지 그에 자서전을 바탕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카사노바는 1725년 4월 2일 베니스에서 태어났는데 그 당시 베니스는 예술과 정치, 음모가 화려하게 꽃피는 유럽의 중심이였습니다.

카사노바의 부모는 무명배우였는데 카사노바를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유럽 순회공연을 떠나버렸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카사노바의 애정결핍은 여기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잘생겼지만 8살까지 말을 하지 못했던 카사노바는 괴이한 점술사에게 주술을 선사받고 초자연적인 현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술 이후에 말을 하게된 카사노바는 평생 초자연적인 현상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를 이용해 여성을 유혹하고 돈벌이를 하게됩니다.


카사노바의 아버지가 사망한후에 9살이 된 카사노바는 기숙사 학교에 보내져 엄청난 독서를 하며 지식을 쌓게됩니다. 이 당시 쌓은 지식들이 평생동안 카사노바의 밑천이 됩니다.


어린 카사노바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자 카사노바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열망에 불타올랐다.




서민의 아들이 카사노바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군은 많지가 않았다. 명예와 부가 보장된 사제직을 카사노바는 원했으며 17살때 사제 수업을 모두 마쳤다. 이 당시 두 고아 자매가 똑똑하고 잘생긴 카사노바를 가만히 두지 않고 유혹해 첫경험을 하게 되었다.


성적 쾌락을 맛본 카사노바는 많은 여성을 유혹하는것이 더 즐겁다는 것을 깨닫고 사제의 꿈을 잠시 접고 연애의 길로 달려갔다.

하지만 사랑이 밥을 먹여주지는 않죠. 곧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된 카사노바는 그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던 소극장의 초라한 연주자가 되어버렸다.


위기는 기회를 가져온다고 했던가 카사노바가 연주를 마치고 곤돌라에 올랐는데 때마침 베니스의 시의원이던 브라가딘경이 뇌졸증을 일으켰다.

카사노바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브라가딘경을 집으로 옮기고 간호하였고 브라가딘 경이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이 초자연적인 힘을 사용하여 치료하였다고 거짓말 했다. 너무 뻔뻔한 카사노바의 말을 믿은 브라가딘경은 카사노바의 양아버지가 되어 주었고 그렇게 카사노바는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차지할 수 있었다.


21살 카사노바는 양아버지의 힘을 바탕으로 사교계에서 최고의 수컷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낮에는 도박 밤에는 귀부인들과 성적 쾌락을 즐겼다.

많은 귀족 여인들이 카사노바를 사랑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카사노바는 잘생긴 외모에 180cm가 넘는 키를 자랑했다. 역시 옛날이나 지금이나 키가 중요하다. 카사노바는 매우 친절했으며 한 여성을 대할때는 모든것을 던져 감동적인 말과 행동을 하였다. 그는 그가 만나는 여성 모두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1753년 모험가로써의 방랑을 마치고 카사노바는 베니스로 돌아왔다. 카사노바는 금새 부유한 상인의 딸과 사랑에 빠졌는데 이를 알아챈 상인이 딸을 수녀원으로 보내버렸다.

수녀원에서 상인의 딸은 수녀와 동성 연애에 빠지게 되었다. 상인의 딸을 방문한 카사노바는 또 다시 상인의 딸의 동성연애 상대인 수녀에게 한눈에 반하게 되었다.

프랑스 대사와 수녀는 연인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이로써 괴이한 4각관계가 완성되었다.


이 프랑스 대사와의 관계로 인해 카사노바는 베니스 종교재판에 넘겨지게 된다. 국가 기밀을 프랑스 대사에게 넘겼을것이라는 의심을 받았으나 증거가 없자 마법과 무신론 혐의로 5년간 베니스 감옥에 복역을 명 받게 된다.



자유로운 영혼이였던 카사노바는 탈출을 계획했다. 같은 감옥에 갇혀있던 수도승과 탈출을 계획한 카사노바는 8일 동안 바닥에 구멍을 팠고 지붕위에 올라가 사다리를 이용하여 댄스홀로 내려와 교도관이 문을 열 아침까지 기다렸다. 도망자가 된 카사노바는 베니스를 떠나 파리로 향했다.


파리에서 이미 유명인사였던 카사노바는 자신의 탈옥 경험담을 책으로 출판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됩니다. 루이15세의 스파이로 복권사업에 참여하는 사업가로 명성을 날리게 됩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것은 사기였습니다. 7년동안 마법에 심취해있던 마담 듀페에게 영혼을 옮겨주겠다며 돈을 뽑아냈습니다.


35살이 된 카사노바는 사기행각에 염증을 느끼고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도승이 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제버릇 개 못주듯이 하루만에 아름다운 여성들을 보고 맘이 바뀐 카사노바는 나폴리에서 방탕한 생활에 빠지게 된다. 레오닐디라는 젊은 여성과 사랑에 빠졌는데 놀랍게도 그어머니가 카사노바의 옛여인이였던것이다.


레오닐다의 어머니는 레오닐다가 카사노바의 딸이라고 주장했고 그 이후로 카사노바는 두 모녀의 잠자리를 했다.




1765년 카사노바는 폴란드에 머물렀다. 발레 구경을 갔다가 옛 여인과 재회를 하게 되는데 질투를 느낀 그녀의 정부와 결투를 하게된다. 결투 이후 카사노바는 다시는 폴란드로 돌아가지 않았다. 파렴치한 바람둥이로 악명을 떨친 카사노바를 받아주는 나라는 없었다. 갈러곳이 없어진 카사노바는 베니스 정부에 사면을 요청하고 18년만에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베니스에 돌아온 카사노바는 집필에 열중하나 책을 잘 팔리지 않았다. 4년만에 카사노바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 후원자도 없고 빚만 쌓이게 된 60세의 카사노바는 다행스럽게 도서관 사서로 일할 수 있게 되었고 그곳에서 시와 소설 등 42권의 책을 썼다.


이중 가장 뛰어난 것이 솔직하게 18세기 상황을 묘사한 자신의 자서전이였는데 9년동안 13시간씩 매달려 썼다고 한다. 수많은 여인들과 사랑에 빠졌지만 죽을 때는 혼자였던 카사노바는 우리는 부러워해야할까?

아니면 안쓰러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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